DMZ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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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의 태극기, 희망의 태극기 우리는 울었고 기뻤고 하나가 됐다
1.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은 기쁨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 2. 광복 직후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에서 태극기를 들고눈물을 흘리는손기정선수. 3. 1948년 태극기를 앞세우고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선수단. 광복의 그날, 우리는 어른노인 할 것 없이 품 안에서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외쳤다. 올림픽 마라톤 1위를 하고도 월계수 다발로 애써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 그의 세계 제패 소식에 환호하며 거리에 뛰쳐나왔지만 목청껏 만세를 부를 수 없었던 나라 잃은 이들. 빛을 찾은 1945년 10월 27일. 우리는 다시 모였다. 태극기를 들고 다시 모였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동포를 서울 하늘 아래에서 만나는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주었습니다. 4. 광복 후 남산 국기 게양대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걸리는 순간. 5. 9ㆍ28 서울 수복 후 중앙청에 게양되는 태극기. 6. 1965년 월남 전선으로 떠나는 맹호부대. 7.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양정모선수. 저기 태극기를 든 선수가 손기정 선수가 아닙니까? 내가 미국에서 나라없는 백성으로 방랑의 슬픔을 맛보고 있을 때 손 선수의 마라톤 세계 제패 소식을 듣고 민족의 기개가 아직 살아 있다고 여겨져 얼마나 고무되었는지 모릅니다.” 1945년 10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이승만 박사의 연설이 시작되자 개막식 기수로 나선 손기정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훗날 전국체육대회로 이름이 바뀐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는 이렇게 눈물바다로 시작됐다. 8.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의 김기택과 유남규. 9. 2002 FIFA 한일월드컵. 10. 2006년 3월 LA 에인절스 마운드에 꽂힌 태극기. 다음 우리의 꿈은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1948년 런던에서 열리는 제14회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큰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임시정부 상태였다. 1947년 초 한국은 KOREA라는 영문 표기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했다. IOC 역사상 국가 성립 이전에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승인된 것은 KOC(Korean Olympic Committee)가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1948년 7월 29일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수단을 이끈 기수는 또 다시 손기정이었다. 당시 서울중앙방송(현 KBS)의 취재기자이자 아나운서였던 민정호는 이렇게 실황중계를 했다. 태극기와 함께 환호하는 김연아.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하건만 눈물을 머금고 저 태극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았던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하리라….” 그로부터 54년 뒤에 열린 2002 FIFA 한일월드컵. 전국 곳곳의 거리와 광장에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수십 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박수를 치고,‘ 오! 필승코리아’를외쳤다. 한국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가로 60미터, 세로 40미터에 무게 1.5톤짜리 초대형 태극기가 관중석 가득 펼쳐졌다. 태극기가 그처럼 늠름하게 보였던 순간이 또 있을까.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광복 70주년, 눈물의 세월을 넘어 환호의 순간을 기억하며 태극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11.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 12. 국산전투기FA-50. 14. 독도의 태극기. 15. 비무장지대(DMZ)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자료제공 :(www.korea.kr))]
- 관리자
- 201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