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통제구역
사람도 동물도 한가족 되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곳
분단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땅에도 햇살은 찾아듭니다. 버려졌던 땅을 일구어 다시 씨를 뿌리며 생명의 터전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다시 고개 내미는 햇살 같은 희망을 우리는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민간인 통제선 북방에 세워져있는 표지판_사진 : 강원일보>
DMZ보다 두꺼운 또 다른 완충지대, 민간인 통제구역
DMZ와 이웃하고 있는 접경지역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다보면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군인들과 만나게 된다. DMZ와 접경지역 사이에 놓인 일정한 공간, 즉 ‘민간인 통제구역’과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DMZ의 탄생과 함께 한반도 허리에 그어진 몇 개의 선 중 가장 남쪽 선,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Civilian Control Line : CCL)에 다다른 것이다. 민간인 통제구역은 일반인의 통행이 일정 부분 제한되는 구역으로 양측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DMZ라는 완충지대를 마련했지만 그 일대에는 여전히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DMZ 아래쪽으로 민간인 통제선을 설정하여 민간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인 통제선은 1954년 2월, 미 제8군사령관 직권으로 DMZ와 인접한 지역에 민간인이 귀농해 농사를 짓는 것을 규제하는 ‘귀농선(歸農線)’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국군이 군사분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면서 1958년 6월, 민간인 통제선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59년 6월부터는 군 작전과 보안 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민간인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토지 이용을 허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지역내에서의 자유로운 출입과 행동은 물론 경작권을 제외한 토지소유권의 행사 등이 일부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인 통제구역은 민간인 통제선이 몇 차례의 조정을 거쳐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축소되고 있으며 현재는 군사분계선 이남 10Km 이내로 정해져 있다(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5조). 바다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 민간인 통제구역 범위
■ 민간인 통제선 북상 현황
1983.01 |
최초 민통선 범위 설정 |
군사분계선 이남 20~40Km(DMZ 포함) |
---|---|---|
1993.12 |
1차 북상 |
군사분계선 이남 10~20Km(DMZ 포함) |
1997.01 |
2차 북상 |
군사분계선 이남 5~15Km(DMZ 포함) |
2008.09 |
3차 북상 |
군사분계선 이남 5~10Km(DMZ 포함) |
DMZ와 가장 가까이 사는 민통선 마을 사람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DMZ 안에도 마을이 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남북이 DMZ 내에 민간인 거주지를 하나씩 두기로 했던 합의에 따라 남쪽에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북쪽에는 기정동 마을이 생겨났다. 두 마을의 거리는 불과 800미터, 맨눈으로도 서로의 마을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두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디높은 각각의 국기게양대다.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게양대는 그 높이가 160m에 달해 기네스북에도 기재되어 있으며,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있는 국기 게양대의 높이도 100m에 이르러 남북의 두 마을 사이에 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쟁과 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방한계선을 지나 민간인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DMZ 안의 마을보다는 긴장감이 덜한 민통선 마을들이 있다. 그중 파주시에는 통일촌과 해마루촌이라는 민통선 마을이 있다. 통일촌은 ‘장단콩’이라는 특산물을 생산하고 있는데 파주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장단콩 축제를 개최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하늘의 ‘해’와 언덕을 의미하는 ‘마루’를 합쳐 ‘해마루촌’이라 이름 붙은 해마루촌은 파주시 진동면에 위치한다. 통일촌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천혜의 자연생태를 유지하고 있는 철새들의 낙원
민간인 통제구역은 그간 우리가 DMZ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땅이다. 드넓은 벌판 위로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떼가 날아오르고, 수풀 속을 헤치며 먹이를 찾는 산양과 담비가 살고 있는 곳, 그곳은 대부분 DMZ 안이 아닌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철원평야며, 열목어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두타연, 국내 최초로 람사르 습지(람사르협회가 습지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지정, 등록하고 보호하는 습지)에 등록된 대암산 용늪 등도 모두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다. 이곳들에 가기 위해서는 시간 여유를 두고 미리 예약과 신청을 해야하는 등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오로지 민간인 통제구역에서만 엿볼 수 있는 자연생태의 신비로움 덕분에 이곳을 찾는 이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민간인 통제구역의 삶에는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민간인 통제구역의 주민들은 그들이 힘겹게 일구어온 삶의 공간을 기꺼이 그곳의 동물들에게도 나누어 준다. 철원군 양지리는 토교 저수지에 매년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들어 ‘철새마을’로 불린다. 9월 초부터 수십만 마리의 기러기, 천 여 마리의 두루미, 만 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양지리 주민들은 희귀한 새인 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국두루미보호협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철새 모이는 물론 독수리 먹이까지 직접 챙기며 생태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철원군 양지리 토교저수지의 철새들> 사진_철원군청
민간인 통제구역의 변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
민간인 통제구역이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출입제한과 개발억제로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 민간인 통제구역이 오랜 기간 개발계획에서 소외되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인들 또한 민간인 통제구역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민간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은 이름처럼 모든 것이 ‘통제’된 채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민간인 통제구역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지역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민간인 통제구역 출입 절차는 간소화되었고 다각 영농에 따른 시설규제 완화 등의 요구도 잇따르면서 민간인 통제선이 차츰 북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민통선 북방 지역에 있던 마을이 그 이남 지역으로 편입되었고 상대적으로 민간인 통제구역 내 마을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민통선의 범위도 민통선 마을도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규제가 남아있는 그곳을 하나둘 떠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DMZ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민간인 통제구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가치와 통일 한반도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것은 민간인 통제구역을 단순히 전쟁의 유물로 형성된 ‘공간’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곳은 개발의 대상이자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 전에 사람이 살고 있는 생활터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돌보지 않던 땅에 새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수십 년 세월을 지켜온 이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 민간인 통제구역의 미래를 생각할 때 ‘사람’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정보등록
2014.08.11.
정보확인
2016.11.03.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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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래를 위해 남겨 놓은 과거, DMZ』(2010), 함광복, 통일부 통일교육원
『민통선지역 생태계 훼손요인 및 영향 저감방안 연구』(2011), 박은진 외, 경기개발연구원
『강원 접경지역 발전개념 정립 및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2011), 김범수, 강원발전연구원
『비무장지대 및 인접지역 자연환경의 효율적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2002),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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