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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고 잃지 말아야 할 DMZ

  • 작성자서영예
  • 작성일2016.10.30




잊지 말고
잃지 말아야 할 DMZ

 

  참 가까운 곳이었다.

  지척이었지만, 우리가 목 놓아 부른 그 곳은 바로 인공기가 영화 세트장처럼 휘날리는 개성시내였다. 그날 나와 함께 숨 쉬었던 망원경 넘어 개성 시민들은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볏짚을 태우는지 향수어린 냄새는 비 내리는 축축한 공기에 섞여 아직도 그곳의 잔상이 남아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파주시이다. 파주라는 특성상 북한을 떠올리게 되는 요소는 제법 많다. 가까운 하늘 위에서 우리는 아직 휴전 중임을 알리는 헬리콥터, 가끔 군용 트럭에 가득 차 어딘가로 이동하는 앳된 얼굴의 병사들, 아파트 정원에 떨어져 있는 북한이 보내온 유인물들...아이는 TV 속 뉴스가 아니어도 자연스레 북한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왜 존재하게 되었으며, 북한의 체제는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르고, 그들은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 되었다. (참고로 아이는 5학년 남자아이이다. 너무 조숙한가?^^) 아이가 인터넷을 뒤지더니 DMZ 연계견학을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 가족은 지난 일요일 견학을 다녀왔다. 시댁 어른들과 함께 하게 된 이번 견학은 그래서 더 뜻깊었는지도 모르겠다. 6.25를 내 아이만한 어린 나이에 직접 겪으셨고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촉촉한 눈으로 그곳을 기억하시려 애쓰셨고 기억은 추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도착한 임진각은 자전거 투어로 무척 부산했다. 견학차 오른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에 빗속에서도 자전거를 타며 오가는 가족들을 보니 아이들과 직접 그 땅을 밟고 느끼는 모습에서 참 멋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라전망대와 도라산 역에 내렸을 때 비 때문인지 더 고요한 모습이었다. 발소리마저도 빗소리에 숨어버리 는 듯 하였다. 역사 안에는 평양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평양이라는 지명은 내겐 아직도 생경하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나만큼의 나이를 갖게 될 때는 우리네 노선도에서 요금을 치르고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길 간절히 빌었다.

드디어 DMZ 연계 견학을 오게 하였던 제3땅굴에 도착하였다. 3땅굴 관련 영상을 관람한 후에 간단한 설명 후 안전모를 쓰고 굴 안으로 들어갔다. 소지품도 카메라도 모두 사물함에 보관하라는 안내를 받고 관람객들은 모두 사물함에 넣었다. 지금 우리가 보게 될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님을 상기할 수 있었다. 외국인 한 무리가 그곳을 견학하고 나오고 있었다. 영어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자못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얘기하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들이었다. 어쩌면 밖에서 바라 본 우리의 모습을 우리만 모르고 있는지도...길고도 가파른 그 굴을 따라 내려가며 남한과 북한이 처한 현실이야말로 이런 모습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전이라는 말로 분단된 우리는 잠시 고향을 등지고, 가족과 헤어졌던 우리의 분단을 보여주는 듯 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길고 긴 터널을 걸어올라 무엇을 하고자 했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삼엄한 신분증 검사를 마치고 임진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산한 그날의 풍경은 내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고 잃지 말아야 할 그곳을 더 많이 알리고 알아야겠다.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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