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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양주 회암사지

  • 주소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14
  • 문의/안내양주시청 : (031)8082-4114
  • 홈페이지www.yangju.go.kr
  • 정보등록2014.08.11.
  • 정보확인2017.11.29.

소개

조선 전기 최대 규모로 큰 위상을 떨쳤던 회암사, 남은 흔적마저 위대하여라

 

오래전 양주에는 한때 승려 3천여 명이 머물렀다는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 회암사지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회암사가 있던 자리로서 터만 남아있는 지금도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곳이다. 조선 전기 이색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인도의 고승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이처럼 큰 규모의 절을 짓기 시작했으며, 회암사는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자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였고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처럼 위상이 높았던 회암사가 쇠락기에 접어든 것은 국가적으로 억불정책을 실시하던 세종조에 이르러서였다. 그후 명종 때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가 불교중흥책을 펴면서 잠시 예전의 위상을 되찾았으나 문정왕후 사후 다시 억불정책이 실시되면서 절은 불태워지고 말았다. 현재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조사와 발굴을 통해 그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정보제공
양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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